张序(장위선생의 서문)
명리(命理)라는 것은 술수(术数이고, 술수(术数)는 음양(阴阳)에 기초하고, 명리(命理)은 인생을 분명히 보여준다. 음양(阴阳)은, 천지(天地)의 도(道)이고, 인생은 길흉(吉凶)의 시기이다.
천지(天地)의 도(道)는 매우 깊어서, 사람들은 일상적으로 사용하지만 알지 못한다. 길흉(吉凶)의 시기도 예측하기 어려워서, 일반사람들은 알고 싶어하지만 알 수 없다. 그러므로 현인(贤人)이 나타나 명리(命理)라는 하나의 술(术)을 만들어서, 사람들로 하여금 명(命)을 알게 만들 음으로써 천지(天地)에 순응하고 도(道)에 다가가게 한다
명리(命理)가 세상에 나오자, 여러 가지로 나누어지고, 사람에 따라 견해가 틀려, 여러 파로 나눠진다. 어떤 맹인 명사자(命师者)가 지팡이를 들고 홀로 마을을 자유스럽게 돌아다니며, 사람들에게 명(命)을 판단(批)하는데, 한치의 실수도 없다. 단칼에 읽어내는 정확성 때문에 멀리까지 명성이 퍼져 민간에게 까지 유행하게 되었다. 제자를 선택하는 것이 매우 엄격해서, 맹인이 아니면 전수하지 않고, 입으로 전하지만 마음을 깨달아야 하고, 문자로는 남기지 않기 때문에, 단명(断命)의 방법을 외부인들은 알 수가 없었다.
나의 스승인 단건업(段建业) 선생은, 사람 됨됨이가 부드럽고 인정이 많고, 학습에 전념하고,기회와 인연이 딱 맞아 떨어져서, 맹파(盲派)의 명인인 학금양(郝金阳)을 만났고, 학선생 한데 선발되어, 맹파(盲派)의 심오한 경지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또한 몇 년이 흐르고 나서야 비로서 맹파(盲派)의 바른 이치를 깨닫게 되었다. 선생님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사심 없이, 최근에 하나하나씩 선생님의 절학(绝学:빼어난 독보적 학문) 및 자신의 느낌을 잇따라 책으로 정리해서, 대중에게 알리고 있는데, 유일한 바램은 맹파(盲派)를 공부하려는 인연이 있는 사람들에게 전달하여 사용하게 하는 것이다.
이리하여 신작 “맹파명리(盲派命理)”에서 전면적이고 체계적으로 맹사단명법(盲师断命法)을 총정리했고, 그것을 바탕으로 또한 맹사학(盲师学)의 발전이 있었고, 맹파명리(盲派命理)를 체계화와 이론화시켜서 일반사람들이 그것을 읽고, 또한 맹사(盲师)의 법(法)을 습득할 수 있고, 맹파(盲派)에 입문할 수 있게 했다.
段선생의 이런 행동들이 우리 같이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는 정말 대단한 행운이고, 그 공은 막대하다라고 말할 수 있다.
맹파명리(盲派命理)를 총괄적으로 보면, 그의 법(法)은 세가지가 있는데, 이법(理法), 상법(象法), 技法(기법)라고 한다. 이 책에서는 두 개를 다룰 것이다. 간략히 언급하면 다음과 같다.
이법(理法)은 단명(断命)의 근본이고, 이법(理法)이 통(通)하면 국(局) 명확해지고, 국(局)이 명확해지면 즉 상(象)이 나온다. 맹사(盲师)는 그 이치를 가슴으로 이해하고, 천지(天地)의 자연(自然)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말(言)은 극히 적었다.
단(段)선생은 맹사(盲师)와 역리(易理) 근거로 하여, 음양오행(阴阳五行)으로 부터 그것을 정리하여 발전시켜서, 맹파(盲派)의 이법(理法)을 만들므로써, 맹파학(盲派学)을 간략화 시켜, 일반사람으로 하여금 이해하게 만들었다.
이(理)라고 말하는 것은 음양을 벗어나지 않는다. 대부분의 술수(术数)는 음양을 근본(本)으로 하지 않는 것이 없는데, 만약 음양과 관련된 것이 아니면 그것은 위술(僞 术)이기 때문에, 명(命)을 배우는 사람들은 이것으로 자세한 판단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맹파(盲派)의 이(理)를 보면, 빈주(宾主), 체용(體用), 간지배치(干支配置)를 말하는데 음양과 서로 부합하지 않는 것은 없다. 빈주(宾主)를 나눠서 내외(内外)를 알고, 체용(體用)을 관찰해서 득실(得失)를 분명히 하고, 간지(干支)를 분석해서 형상(形象)을 분별하고. 국운유년(局运流年)을 관찰해서 동정(动静)과 길흉(吉凶)에 통(通)한다.
공부하는 사람이 만약 음양에서 부터 시작한다면 적은 노력으로 많은 성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오행(五行)으로 말하자면 역시 이(理)에 도달한 것이니, 맹파(盲派)의 공용(功用)의 이(理)는 즉 맹파명리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근본(本)이다.
만약 제국(制局), 합국(合局), 묘국(墓局), 생국(生局), 화국(化局), 대국(对局), 전국(战局)등…… 형식은 다양하지만 이(理)가 하나라면, 생극승모(生剋乘侮)와 충합형해(冲合刑害), 팔자(八字)의 공(功)은 이것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 이(理)를 아는 사람은 맹파(盲派)에 입문할 수 있고, 명자(命者)의 의향, 명국(命局)의 고저(高低),부귀빈천(富贵贫贱)의 정도,대운유년(大运流年)의 길흉(吉凶)에 관해서 모두 알 수 있다.
상법(象法)은 맹파(盲派)의 정수이고, 또한 술수(术数)의 정수이기도 하다. 술수(术数)는 역(易)에 서 근원을 두고 있고, 역(易)은 오직 상(象)의 학(学)이다. 고대성인들은 다방면으로 자세히 관찰하고 주변의 모든 사물들을 취해서 괘(卦)를 만든 결과, 비로소 역학(易学)이 유행하게 되었다.
맹파(盲派)의 상(象)은 명리의 오래된 책에 실려 있지는 않지만, 역(易)의 상(象)에서는 모두 맞아떨어진다. 명(命)을 판단(批)하는 데 있어, 모든 것이 마치 신(神)처럼 영험하게 판단(批)한다. 맹사(盲师) 하중기(夏仲奇)선생이 어떤 여성이 80세 노인에게 시집가고, 멀리 6000리나 떨어진 곳으로 시집간다라고 판단을 했는데, 이 모든 것들은 상(象)을 사용한 것이다.
혹자는 이것은 수(数)인데 어찌 상(象)이라고 헛소리하느냐고 말을 하지만, 상(象)을 보는 것은 수(数)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어찌 알지 못하는가? 상(象)은 수(数)에서 스스로 명확하게 드러나고, 천문(天文)이 수학(数学)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처럼 상(象)과 수(数)도 똑 같다.
책에 기재된 것을 보면, 간지상(干支象), 십신상(十神象), 궁위상(宮位象), 신살상(神煞象) 말하고, 상(象)의 운용은 또한 대상(带象), 공상(共象), 합상(合象), 화상(化象)를 말하고 있는데, 이 모든 것들은 상(象)을 취(取)하는 법문(法文)이다. 그러나 상법(象法)의 사용은 깨달음에 달려있기 때문에 그 법(法)을 알지만 통변(通變)을 알지 못한다면, 또한 운용할 수 없다.
일찍이 한 사람이 어떤 여자의 팔자를 단(段)선생에게 보여줬는데, 선생이 이 여자 남편이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었고, 게다가 몸과 목이 각각 다른 곳에 놓여있던 사실도 맞췄는데, 이것이 상(象)의 운용이다. 명(命)을 공부하는 사람이 만약 상법운용을 능수능란하게 할 수 있다면, 단명(断命)은 자세하고 직접 본 것 같은 수준에 도달을 수 있다.
기법(技法)은 맹사(盲师)가 전수하지 않는 비밀이기 때문에 구결(口诀)로써 서로 전수해서, 일반적인 이치로는 그것을 추측할 수 없다. 소위 말하는 공리(公理)는 스스로 증명할 수 없다는 것과 똑 같다. 본 책에서 다루지 않았기 때문에, 함부로 말하지 않겠다.
나는 갑신(甲申)년 여름 초에 단건업 선생을 우연히 만났는데, 선생은 “팔자는 반드시 세로로 배열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처음에는 선생의 의미를 알지 못해서, 낡아빠진 것이라고 생각하면 웃었는데, 나중에 자신의 천박함을 깨닫게 됐다.
<계사(系辞)>첫머리에서 “천존지비(天尊地卑) 건곤정의(乾坤定矣)”라 말했다. 간지(干支)가 즉 천지(天地)이고, 존비(尊卑)가 자존(自存)이다. 존비(尊卑)를 나누지 않으면, 천지(天地)가 명확하지 않고, 형란(形乱)하면 신(神)이 흩어지게 된다.
단(段)선생이 이야기하는 근본 뜻은 천지(天地)에 대한 경외감, 명리(命理)에 대한 경외감이다. 경외감이라는 것은 신앙의 근원이어서, 만약 불교의 신자들이면 석가모니를 경외할 것이고, 기독교 신자라면 하느님을 경외할 것이다. 경외감이 없어지면 신앙도 없어진다.
만약 명(命)을 배우는 사람이 명리(命理)자체에 대해 경외감이 부족하다면, 신앙을 잃었는데 또 어떻게 사람들과 명(命)을 논할 수 있겠는가? 팔자를 세로로 배열하면, 느낌이 직접적이고, 천지(天地)를 나누면 음양(阴阳)이 나타나고, 이역(理易)이 명확하면 상역(象易)이 나타나고, 팔자에 대한 이해에도 많은 도움이 된다.
현재 명을 공부하는 사람들도 책 쓰기가 편리하다는 이유로 팔자의 배열의 모양을 소홀히 하는 사람은 천지의 도를 정말 알지 못하는 것이다.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 모두가 참여하기를 특별히 바란다.
단(段) 선생이 신작을 완성하고, 머리말을 쓰도록 했지만, 나의 재능이 모자라고 학문에 깊이가 없기 때문에 글을 쓰는 동안 부끄러워 몸둘 바를 몰랐다. 오로지 맹파명리(盲派命理)의 깨달음으로 인해서 조리가 없지만 서문이라는 글을 썼다. 첫째는 스승의 가르침에 감사하고, 둘째는 동료들이 서로 보완하고 협력해서, 맹파명리(盲派命理)가 대중들과 함께하면서 더욱더 발전하기를 기원하고, 아울러 스승의 소원이 이뤄지도록 희망한다.
张卫(장위)
을유(乙酉)년 겨울 대련에서